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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장님 000입니다.

원장님께 상담 받은 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 그때가 생생합니다.

덕분에 지금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몇주 전 저희 누나에게도 좋은 상담 해주셔서 깊이 감사 드립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후기를 작성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

 

 

 

오랫동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고민해 왔습니다.

부자지간으로 지내온 30년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순간순간을 버티자는 생각으로 지내왔습니다.

괜히 담대해진 척 장난도 치고, 마음먹고 화도 내보고, 사랑한다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에는 부쩍 감성적으로 변한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부질없는 소리로 어색한 애정을 보이는 목소리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왜 그랬냐 묻고 싶지만 이미 저는 훌륭한 아들이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과격한 농담을 받아주고, 괜한 조언을 구하고, 꾸지람도 듣고, 어른 되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염려를 듣고, 이러쿵저러쿵, 결국엔 재치 넘치는 농담으로 웃겨드립니다.

 

통화가 끝나면 뜻 모를 공허함과 안도감이 들어 괜히 어깨를 펴 보곤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도 구부정하게 동정을 바라듯 통화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제 신혼집에서 어릴 적 모습으로 화를 내셨습니다.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입가에 침이 고일 정도로 소리를 치셨죠. 그래도 서른 두 살의 저는 울지 않고 대응했습니다.

두꺼운 책으로 때리지도 않으셨고 철제 의자로 위협도 안하셨고 국그릇을 던지지도 않으셨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아버지를 배웅해 드렸는데 그제서야 안방 문이 열렸습니다. 제 아내가 6개월 된 아들을 안고 아버님 가셨나고 묻더군요.

 

그날 밤 자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3일을 고심한 끝에 아버지께 장문의 글을 보냈습니다.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만날 수 없다는 글이었는데 아버지 성격 상 결별의 편지로 받으셨을 겁니다.

이즈음부터 혼자 있을 때면 목이 죄여왔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주변 가족의 말이, 식욕을 잃을 정도로 힘들어 하신다는 아버지의 근황이, 나쁜 아들이 되었다는 내 자신이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습니다. 30년만인데 갑자기라니요.

 

이후 쇄골 안쪽에 강한 압박감이 수시로 느껴졌지만 병원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었습니다.

혼자 운전하기가 무서울 정도가 된 후, 고민 끝에 센터를 찾았습니다.

 

"어색하네요"

처음 보는 원장님께 내뱉은 첫 마디 입니다.

 

"어색하다는 말을 하실 수 있는 건 어색함을 견딜만하신 거예요."

시간이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후로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는 불쌍한 어른이니까요.

사회생활에서 간혹 받는 스트레스를 이야기하고, 묵묵히 참아내는 나를 아쉬워하고,

평소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를 떠올려봤습니다.

유독 묵묵히 참는 모습이 많이 그려지는 탓에 점점 답답했습니다.

 

상처 받아도 말 한마디 못하고 화도 못내던 저를 묘사했습니다.

이럴 땐 이래서 못했고, 그때는 이런 이유로, 또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으니까 참은거라고

잔뜩 날을 세운 채 변명의 여지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날의 첫 상담은 사실 한마디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왠지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결국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준비했던 변명과 자질구레한 설명은 다 무너졌고 감정만 남았습니다.

 

저는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상담이 끝나고 한동안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날을 최고의 날로 기억합니다.

 

이후의 상담은 상처 받은 과거의 나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과거의 어린 내가 지금의 나와 같았습니다.

반항할 수 없는 폭력에 눈물만 흘리던 어린 아이가 사실 현재의 나이기 때문에,

무섭지만 참고, 되려 웃기도 하며 아주 슬픈 오늘을 살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 그때와 똑같이 자책하고 후회하지만 진심으로 품을 수는 없어서 회피하는 방법을 택했던 탓이죠.

"과거"라며 쉽게 덮어버리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어린 아이를 찾는 과정은 괴로웠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살펴봐야 하니까요.

사실 기억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어제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우는 아이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아직 달래고 눈물을 멈춰주진 못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요즘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온전한 나로 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전처럼 화나고 짜증날 때 똑같이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스스로 인지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하고 싶던 공부를 시작했고,

다소 거칠어 보일지 몰라도 부당함에 참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상대방에게 한마디 하려고 마음만 먹어도 덜덜 떨려오는게 사실이지만,

 

지나가 버리고 후회할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덕분인지 몸이 먼저 반응하더군요.

 

덕분에 짧고 불편한 순간은 잦아졌지만, 아주 편안한 긴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변이 변하길 바라는 것은 어찌보면 무책임한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불행과 걱정은 나를 살펴보면 해답이 보이는 문제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아버지의 사과를 바랬지만 이젠 상관없습니다.

 

저의 요청에 응답해 노력하셨어도, 설령 무시하셨다 해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그냥 제가 괜찮습니다.

 

 

원장님께 받은 심리상담은 제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복해야 한다거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전보다 더 바르고 행복합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이제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원장님,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온전한 나로 진짜 오늘을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한달 전 꿈에는,

장애가 있는 새가 등장했습니다.

비루한 모습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하체에 휠체어를 달았지만 사람까지 매달고 힘차게 날아 오르더군요.

 

말도 안 되게 강하고 당당한 모습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엔 새의 시선으로 숲속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주 전, 아버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의도치 않은 불가피한 만남이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다시 헤어졌습니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종종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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